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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리산 ] 함양 전통 한옥 개평마을
등록일시 2017-09-11 오후 7:42:00

일두 정여창의 선비정신을 만나다 ‘경남 함양 개평마을’

 

양반 고장을 지칭할 때 늘 '좌 안동, 우 함양'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듯이, 함양 역시 안동 못지않은 양반 고장으로 손꼽힌다. 여기에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의 고향이자 500여 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개평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개평마을에는 일두 고택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유서 깊은 고택이 남아 있다. 마을길 구석구석을 둘러보노라면 기품 있으면서도 수수한 시골 인심이 느껴지는 포근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개평마을 전경

일두 선생 산책로에서 본 개평마을

고색창연한 전통 한옥을 만나다

'좌 안동, 우 함양'이란 말이 있다. 빼어난 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영남 사림을 대표하는 두 지역을 여섯 글자로 함축한 말이다. 그만큼 선비의 기개, 가문과 학문에 대한 자부심, 뿌리 깊은 양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고장이다. 함양 가운데서도 지곡면에 자리한 개평마을은 조선시대 성리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다. 이 마을에는 일두 고택을 비롯해 수백 년 동안 대물림해온 유서 깊은 고택이 즐비하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개평마을 표지석 언덕을 따라 소나무가 이어지는 일두 선생 산책로

[왼쪽/오른쪽]마을 입구에 세워진 개평마을 표지석 / 언덕을 따라 소나무가 이어지는 일두 선생 산책로

 

개평이라는 이름은 내와 마을이 낄 '개(介)' 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개평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보면 좌우로 두 개울이 하나로 합류하고, 그 사이로 개평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과 잇닿아 넓은 들판이 펼쳐져 '개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평마을 고샅길을 걷기 전에 마을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일두 산책로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일두 선생 산책로는 지곡초등학교에서 개울 건너편 늠름한 소나무 군락을 지나 선암공원의 정자와 마을회관, 정일품농원을 거쳐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다. 낮은 언덕을 따라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무리지어 서 있는데, 한없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휘어지고 퍼져 있어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소나무 군락은 풍수지리에 따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300∼400년 된 다부진 적송이다. 언덕을 오르면 오를수록 개평마을의 전경이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진다. 마을과 들판뿐 아니라 남덕유산 능선이 장쾌하게 흐른다.

 

마을 입구 언덕의 소나무 군락 일두 선생 산책로의 소나무 군락

[왼쪽/오른쪽]마을 입구 언덕의 소나무 군락 / 일두 선생 산책로의 소나무 군락

 

이제 개평마을을 한번 둘러보자. 마을의 고샅길을 둘러보는 순서는 따로 없다. 길이 나 있는 대로, 발걸음이 닿는 대로 그냥 걸으면 된다.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담장의 곡선과 이끼가 낀 기와를 이고 있는 기와지붕에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택 주변 곳곳에 자리한 텃밭에는 옥수수며 고추 따위가 담장을 마주하고 탐스럽게 영글어 시골 정경을 물씬 풍긴다. 가녀린 소리로 짖어대는 강아지와 우사에서 두 눈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는 소 한 마리가 낯선 이방인을 맞아준다.

 

개평마을을 이어주고 있는 돌담길

개평마을을 이어주고 있는 돌담길

풍천 노씨 대종가 가는 길 개평마을길에서 만난 강아지와 소

[왼쪽/오른쪽]풍천 노씨 대종가 가는 길 / 개평마을길에서 만난 녀석들

 

개평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들이 제법 많다. 일두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을 필두로 오담 고택(경남 유형문화재 제407호), 풍천 노씨 대종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56호), 노참판댁 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60호), 하동 정씨 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361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숨어 있는 보물을 찾듯 만날 수 있는 유서 깊은 고가들이다. 이들 가운데 오담 고택, 풍천 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는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주거공간이므로 둘러볼 때 주의해야 한다. 개평마을에서는 일두 고택을 비롯해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최근에 지어진 정일품명가는 한옥체험뿐 아니라 청국장, 된장, 가마솥밥 등 전통식품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하동 정씨 고가 전경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하동 정씨 고가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고가, 일두 고택

일두 고택은 정여창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이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이 중건했다.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유배와 죽음, 부관참시까지 우환이 이어졌으니 집안을 쉽게 일으키지는 못했을 터다. 고택에는 원래 17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랑채, 안채, 문간채, 사당 등 12동의 건물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조선 후기에 중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두 고택 안마당 전경

일두 고택 누마루에서 본 안마당

고택 입구 솟을대문 안쪽으로 홍살문과 함께 붉은색 목판에 흰 글씨가 쓰여 있는 5개의 편액이 눈길을 끈다. 이 편액은 나라에서 하사한 충효 정려(旌閭, 충신?효자?열녀가 살던 고장에 붉은색을 칠한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로 집안의 자랑이자 자부심을 표현하는 하나의 징표다. 일두 정여창의 조부를 비롯하여 후손이 하사받은 정려가 무려 5개나 된다. 한 집안에서 정려를 5개나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일두 고택 솟을대문에 걸려 있는 5개의 정려

일두 고택 솟을대문에 걸려 있는 5개의 정려

마당에 들어서면 높은 축대 위에 다부지게 올라앉은 사랑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충효절의(忠孝節義)'라는 글이 사랑채 벽면에 붙어 있다. 한지가 겹겹이 붙어 있어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진다. 한지에 쓰인 글자가 바래거나 해지게 되면 그 위에 다시 한지를 덧대어 똑같이 필사한다고. 일두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 집 안에 석가산을 조성해놓았다는 점이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 조성한 석가산은 돌을 쌓아 만든 산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산에 흙과 돌, 물과 나무가 있듯이 마당 안으로 산을 끌어들여 자연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정원을 만든 셈이다.

 

일두 고택의 사랑채 전경

일두 고택의 사랑채 전경

일두 고택 사랑채에 붙어 있는 ''충효절의 일두 고택 사랑채 앞에 조성한 석가산

[왼쪽/오른쪽]일두 고택 사랑채에 붙어 있는 '충효절의' / 일두 고택 사랑채 앞에 조성한 석가산

사랑채가 남성의 공간이라면 안채는 여성의 공간이다.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공간이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다. 안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각문과 중문을 통과해야 한다. 넓고 밝은 안채는 금잔디가 깔려 있어 조선시대 폐쇄적인 여성의 공간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두 고택 입구에는 일두홍보관이 새로 조성되었다. 일두 정여창의 생애와 업적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일두홍보관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여 미리 예약하면 일두 고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문의 및 예약 055-960-5555).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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